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 그런데 눈이 녹으면 봄이 오기도 한다.

수학이나 자연과학과 다르게 사회문제는 단일한 해답을 얻기 쉽지 않다. 만약 사회문제가 함수처럼 x에 대응하는 오직 하나의 y가 가능하다면 인간은 차라리 1초에도 수천 번 계산을 할 수 있다는 슈퍼컴퓨터에 자리를 내주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현실은 컴퓨터의 계산처럼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철학자 송두율의 말처럼 0과1 사이에는 수많은 가치들이 존재 할 수 있다. 0.01, 0.02처럼 0과 1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을 나는 개인의 다양한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태극기부대의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애국한다는 생각으로 광장에 나온다. 애국한다는 마음을 갖고 태극기부대의 생각에 동조하는 교수도 있고 옆집 사람도 있다. 심지어 내 가족도 있다. 이런 복잡한 현실에서 우리사회가 처한 문제에 대해 확연한 입장을 정한다는 게, 결코 쉬울 수 없다.

그런데 현실은 나와 의견이 다르면 틀린 것으로 취급하고 성난 얼굴로 서로를 비난한다. 좀 차분하게 돌아보고 서로의 주장에서 취할 것들은 없는지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입장을 명확히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입장만 옳다는 태도에 대해서 돌아보자는 것이다.

입장의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입장의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사회적경제 분야의 일에 대해서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은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조직’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의 경제조직은 불가능하다고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심지어 이런 형태의 사업조직을 일탈한 것으로 본다. 그들에게 난 말하고 싶다.

때로는 올바르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에서는 이런 생각을 관용이라고 부른다. 올바른 사고가 궁극적 진리나 구제에 이르게 하는 길이 아니라면 사고를 통해서 다른 신념체계에 도달한 사람들과 싸울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관용 없는 사회에 혐오와 배제가 움튼다. 수학도 아니고 자연과학도 아니고 사람 사는 일 중에 틀린 것과 다른 것을 확연히 구분하는 일이 가능할까? 만약 사람 사는 일에 대해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확실히 구분 할 수 있다면 정당은 오로지 하나의 정당만이 존재하고 부부싸움의 잘잘못은 컴퓨터가 가려야 마땅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은 그럴 수 없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도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빨리 갈 수도 있다. 입장이나 생각의 차이가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할 근거가 될 순 없다.

우리는 다만 다양한 생각들 속에서 합의와 동의를 구하며 자유, 민주, 공화와 같은 세상을 향해 0에서 1로 무한히 행동할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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